대통령 입에서 미래지향적인 관계라...
'미래지향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일반적으로 미래지향적이라면 긍정적이고 보다 나은 것을 의미하겠지만, 한일관계에서는 좀 묘한 뉘앙스를 풍깁니다. 특히 새로 뽑힌 대통령이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는 투의 말을 한다는 것은 좀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인식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거든요. 그것도 다른 날도 아니고 삼일절 기념사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한일관계에서 과거가 언제부터 '얽매이지 말아야 할 것'이 되어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일관계에서 과거가 자꾸 문제되는 것은 일본측에 문제가 있기 때문 아닙니까. 우리가 과거 역사를 가지고 트집잡아 그들에게 상식에서 벗어나는 과도한 요구를 한 적도 없고, 총리가 새로 뽑힐 때마다 우리나라에 대해 석고대죄를 하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저 인도(人道)와 양심에 근거해 과거 한 일들을 인정하고, 무수히 해 왔던 속없는 '사과'에 걸맞는 행동을 요구할 뿐입니다. 그런 간단한 일조차 하지 않는 일본 우익들, 그 우익들에 의해 돌아가는 일본정치..
그런데 왜 우리만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까? 36년간의 식민지배를 근대화시켜주었다는 식으로 미화하고, 자기들에게 불리한 역사적 사실은 인정하지 않으며, 망언에 발끈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더 사과해야 하느냐 하는 식인데, 우리가 왜요? 일본 정치인들이 밥먹듯 하는 말이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는 말인데, 이 말이 대통령이라는 인간 입에서 나오는 꼴을 지켜봐야 한다니... 이런 XY..(삐---). 아니, 먼저 일본 우익들을 '열린 민족주의'자로 만든 다음에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하면 또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피해를 본 우리나라 사람들만 열려야 하고, 일본 우익들은 서슴없이 망언들을 쏟아내는지..
이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이념을 모두 버리고 실용이 최고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한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인간 생활이 이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이런 막무가내 실용주의가 과연 타당합니까? 돈만 되면 자존심이고 신념이고 다 갖다 버리는 것이 실용주의라면, 과거 독재정권에 협력하고 현재 정부 각료가 되어 있는 그들의 행동도 정당화되겠고, 실용주의에 충실해 땅 투기를 한 사람들도 좋고,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 우리말을 없애고 영어를 국어로 만들어도 되겠네요?
'이명박식 실용주의'의 실체에 대해 개인적으로 상당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실용적 태도를 가져야 하겠지만, '간 쓸개 다 빼줘 가면서 실용주의'는 문제 있습니다. 어떻게 정치적인 사안마저 실용주의로 풀려 합니까? 정치는 근본적으로 이념과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혹시 만약 - 이념의 틀에 매여서 폐쇄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문제이고, 이를 타파하는 것이 실용주의와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 제일 먼저 툭하면 빨갱이 운운하는 사람들부터 고쳐놔야 할 것 아닙니까? 보수적인 이념을 가지면 괜찮고, 노동자에 우호적이고, 사회복지를 강조하며,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실용적이지 못한 사람입니까? 정말 의문입니다.
말이 조금 샜습니다. 결론은 적어도 생각이 있는 분이라면 삼일절 기념사에서 일본 우익과 같은 멘트를 날리면서 저같은 소시민에게까지 오해를 사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열린 민족주의도 좋고, 코스모폴리탄이 되어도 상관 없습니다만, 적어도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 그것도 과거 36년간 일제의 압제와 폭력, 반인간적인 범죄행위를 겪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정확한 역사 인식을 담은 말을 해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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