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없이 수사적으로만 발전한 기자회견
오늘 오후에 있었던 특별 기자회견은 그럴 듯한 말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내용을 자세히 까보니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는 생각만 들더군요. 정리하면 수사적으로는(rhetoric) 지난번보다 확실히 발전했지만, 실질적인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마음에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그동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졸속협상의 원인에 대해서 한미관계 복원과 FTA 때문이라고 이유를 달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전 정부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것, 왜 정권이 바뀌자마자 잘 버티던 협상을 그냥 다 내주는 것으로 결판지었는지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왜 더 솔직해지지 못합니까? 미국에 잘 보이기 위해서, 그리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의 카트를 몰기 위해서라고. 또한 그 협상을 굴복으로 끝나게 한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말입니다. 이제 대부분 다 아는 사실이 되었습니다만...
그리고 쇠고기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도 그저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가 식탁 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겠다고 하였을 뿐, 국민들이 요구하는 재협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안된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월령 30개월이 문제의 핵심으로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촛불을 든 국민들이 원하는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사실상 지난 협상의 주된 부분을 개정하는 재협상이 필수적이지만, 아직까지 추가협상으로 뭔가를 해 보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군요. 사실 기자회견문을 읽어보면 마치 국민들의 부적합한 재협상 요구로부터 국익을 지키기 위해 재협상을 거부했다는 투로 적혀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만들어 놓은 자기는 책임 없다는 듯이 말이죠. 여전히 2mb의 머릿 속에 들어 있는 - 경제를 위해서 쇠고기 문제는 포기 가능하다는 생각이 바뀌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대운하를 포기하겠다고는 했지만, '국민 여러분이 반대하신다면' 이라는 단서를 달아 애매하게 만들어 놨습니다. 사실 국민들의 의사라는 것은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거든요. 대운하 국민투표라도 하려는 겁니까? 국민 여러분이 반대하신다면 포기한다는 앵무새같은 말이 아니라, 사실상 포기 선언을 원했습니다. 그냥 이렇게 넘어간 다음, 촛불이 사그라들고 자기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득세하기 시작하면 그때 다시 국민의 지지 어쩌구 하면서 다시 삽을 들겠다는 소리로 들립니다. 당신의 소통이라는 것은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과의 소통, 나머지와는 명박산성을 쌓는 것 아니었습니까. 어제 한나라당에서 말했던 국가 기간망과 의보 민영화 안하겠다는 말도 같은 전략 아닐까요. 일단 넘어가고 모르는 사이에 거의 민영화...
인적 쇄신 이야기도 알맹이가 없습니다. 현실 인식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의문이 되는 부분입니다. 고소영, 강부자 등 현 정권의 인사에 대해 비꼬는 유행어가 국민 전체에 퍼져 있는 상황인데도 그에 대해서는 그저 대폭 개편하겠습니다 정도로 넘어가려 하는군요. 반성문이라면 마땅히 과거 도덕성을 내던져버린, 그리고 능력 검증마저 대충 넘어갔던 인사에 대해서, 취임 100여 일에 터져나온 권력다툼 문제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어야죠.
그밖의 이야기는 더 살펴볼 거리가 없습니다. 반성문이 아니라 경제가 어려우니 정부를 지지해달라. 그뿐이거든요. 국민이 원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나마도 과거 내놓았던 황당한 정책들 - 소위 mb물가지수 50, 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유지로 물가상승에 불을 지른 것 등등 - 에 대한 성찰 내지는 반성도 없고, 그저 경제를 살리겠다, 일자리를 만들겠다, 선진화를 이루겠다.... 솔직히 지겹습니다. 식상합니다.
오랜 시간이 걸려 나온 기자회견 치고는 내용이 너무 빈약합니다. 큰 대책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은 해 주셨어야죠. 아닌가요? 그리고, 겨우 이 정도로 바닥까지 떨어진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회복하겠다는 계산은 아니겠지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6월 10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 아침이슬 > 이라는 노래 소리도 들었습니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서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늦은 밤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수 없이 제 자신을 돌이켜보았습니다.
저는 최근 각계각층의 지도자 여러분을 만나 말씀을 들을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 분들께서는 제게 이렇게 충고해주셨습니다.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국민들께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그분들의 말씀대로 국민들께 저간의 사정을 솔직히 설명 드리고 이해를 구하고 또 사과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국정운영 방향을 말씀드리고 새 출발을 다짐하려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저는 마음이 매우 급했습니다. 역대 정권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취임 1년 내에 변화와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더욱이 제가 취임하던 때를 전후해 세계 경제의 여건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국제금융위기에 겹쳐 유가와 원자재 값마저 하늘 모르게 치솟았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한미 FTA 비준이야말로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지름길의 하나라고 판단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계속 거부하면 한미 FTA가 연내에 처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았습니다. 미국과의 통상마찰도 예상됐습니다. 싫든 좋든 쇠고기 협상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34만 개의 좋은 일자리가 새로이 생기고, GDP(국내총생산)도 10년간 6%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대통령으로서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기회의 문이 닫히는 것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입니다. 거기다 북한 핵의 위험을 머리 위에 이고 있습니다. 안보의 측면에서도 미국과의 관계 회복은 더 늦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식탁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꼼꼼하게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자신보다도 자녀의 건강을 더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현안이라 하더라도, 국민들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 국민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챙겨봤어야 했습니다. 저와 정부는 이 점에 대해서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금 모든 외교력을 동원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국제표준과 충돌되지 않고 통상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식품 안전에 관한 국민들의 염려를 해소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지난 6월7일 미국 부시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 사항을 구체적으로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를 계기로 지금 이 시각에도 양국 대표들이 모여서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한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할 것입니다.
미국 정부의 확고한 보장도 반드시 받아내겠습니다. 미국도 동맹국인 한국 국민의 뜻을 존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모든 식품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철저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서는 미국과의 재협상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재협상의 어려움만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태도가 국민 여러분께는 정부가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비친 것 같습니다.
이러한 국민들의 요구가 커지자 정치권에서는 저에게 '일단 재협상 요구를 수용하고 보자'는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통상마찰이나 국익에 손해가 있더라도 당장 이 사태를 진정시켜야 한다'고 받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이것이 국내 문제라면 벌써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저의 정치적 입장만을 고려했다면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제가 '재협상 한다'고 선언했다면 당장은 어려움을 모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 자신, 많은 갈등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온갖 비난의 소리가 들리는데 제가 무엇을 위해 고집을 부리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가 이익을 지키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엄청난 후유증이 있을 것을 뻔히 알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2000년에 벌어진 마늘 파동을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중국산 마늘이 대거 들어오면서 국산 마늘 값이 폭락하자 정부는 여론무마용으로 긴급관세를 부과했습니다. 그러자 중국은 한국 휴대폰 수입을 중단시켰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고, 변변한 자원조차 없는 우리나라가 살아남을 길은 통상밖에 없습니다. 우리 경제의 통상 의존도는 70%가 넘습니다. 통상대국 일본이 20%대 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의존도가 높습니다. 그런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신뢰마저 잃는다면 미래가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면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방법으로 정부는 추가 협상을 선택한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이런 사정을 깊이 이해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취임 두 달 만에 맞은 이번 일을 통해 얻은 교훈을 재임 기간 내내 되새기면서 국정에 임하겠습니다.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과 함께 가겠습니다. 국민의 뜻을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청와대 비서진은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대폭 개편하겠습니다. 내각도 개편하겠습니다. 첫 인사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서 국민의 눈높이에 모자람이 없도록 인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선 공약이었던 대운하 사업도 국민이 반대한다면 추진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정책도 민심과 함께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실히 느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제 경제 여건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원자재, 곡물 값은 엄청나게 오르고 국제 유가는 작년보다 두 배나 올랐습니다. 앞으로 계속 오를 것이라는 우려 섞인 예측도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세계 경제가 위기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그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대비를 지금부터 철저히 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 국내에서도 유가 인상으로 인한 생계형 파업으로 물류가 끊기고 공장 가동이 멈추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선 근로자들을 무조건 탓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파업이 오래 가 경제에 결정적 타격을 준다면 그 피해는 근로자를 포함한 국민 모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됩니다. 지금은 기업도 근로자도 정부도 모두 한 걸음씩 양보하고 고통을 분담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70년대 석유파동과 90년대 금융위기 등 여러 차례의 위기를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훌륭히 극복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일도 서로 고통을 나누면서 손잡고 협력할 때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가장 고통을 받는 이들은 서민들입니다. 물가를 안정시키고 서민의 민생을 살피는 일을 국정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반드시 약속대로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국내외 기업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겠습니다.
공기업의 선진화, 각종 규제 개혁, 교육제도 개선 등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꼭 해야 할 일들은 철저히 준비해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이제 새롭게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다시 국민 여러분께 다가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새로 출발하는 저와 정부를 믿고 지켜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촛불로 뒤덮였던 거리에 희망의 빛이 넘치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6월 19일 기자회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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