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지 이제 ‘겨우’ 5개월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불과 5개월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해놓은 것들을 보고 있으면,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말아먹는 데는 순식간이라는 말에 심각하게 동의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도 있겠지만 -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 모든 부문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화 이후 최대의 퇴보를 경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프로’인 줄 알았는데, 아마추어 수준도 못 된다는 실망은 접어두고라도 벌어지는 일들을 종합하여 생각해 볼 때, 이들은 기본적인 자세부터 틀려먹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이 정권이 민주정부인가 하는 회의가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과연 이명박 정권은 - 그들이 말하는 대로 - 민주정부입니까? 그들이 과연 민주정부라고 스스로를 칭할 자격이 있습니까?
1.
저는 의도적으로 정권과 정부라는 말을 구별해서 사용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권(Regime)은 민주적이지 않은 세력이 권력을 장악한 경우 - 즉 군사정권, 특히 유신을 이용해 장기집권을 획책하고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심각하게 억압했던 4공화국, 국민들을 학살하고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 그리고 그 잔당들이 민주세력의 분열을 이용하여 집권에 성공했던 노태우 정권이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반면 정부(Administration)라는 호칭이 붙으려면 우선 집권 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하고, 집권 이후에도 그 권력 행사에 있어서 국민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거나 자기 세력들의 이익을 위해 국정을 전단하거나 농락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그 정부가 사회, 경제적 민주화를 위하여 노력한다면 더 좋겠지요.
민주화 이후 세워졌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이런 기준에 따른다면 다소 논란은 있겠으나 정부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집권 후기의 심각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정부 초기의 눈부신 개혁 성과는 칭찬받아 마땅하고, 김대중 정부 역시 어려운 상황에서 그나마 어느 정도 경제를 복구시켰으며(물론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치루어야 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 와서는 국가 내의 여러 부분이 탈권위, 민주화되어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단계로 변화했다는 것 자체가 큰 업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10년 후 다시 집권한
한나라당, 그리고 소위 ‘CEO리더십’과 ‘경제 대통령’ 이미지로 국민을 사로잡았던, 그리고 사상 최대의 표차로 권력을 차지한 이명박 정권에는 - 비록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 정부라고 칭하기 망설여집니다 - 아니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촛불정국에서 그들이 했던 - 정치적인 촛불 때문에 민주정부가 위태로워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자기네들이 그런 짓들을 해 놓고 민주정부라니...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 강령적 입장, 다시 말해 민주적인 절차를 중시하는 시각에 의할 경우 이명박 정권은 민주적인 투표를 거쳐서, 그것도 엄청난 표 차이로 집권했으니 당연히 민주정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민주화 과정이 비록 ‘대통령 직선제 쟁취’라는 절차적 이슈에 집중하여 성공할 수 있었지만 이제 민주화 이후 20년의 세월이 흘러갔음을 고려할 때, 당연히 이제는 좀 더 넓고 큰 범위 - 다시 말하면 사회, 경제적 부분까지 민주주의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최대 강령적 입장 -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이제는 민주정부 소리를 듣기 위해서라면 적어도 국민의 목소리를 대놓고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했다며 두 번이나 고개를 숙였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더 앞으로 거슬러올라가면, 최초 평화적이었던 촛불시위가 17회 반복되었음에도 이명박 정권은 귀를 기울이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투표권 없는 학생들이 나섰기 때문에 그랬던 걸까요?
졸속협상으로 촛불시위를 불러 오고, 무시와 안하무인 격 반응으로 촛불을 크게 키우고, 마침내 격렬하게 만든 주범도 따지고 보면 이명박 정권입니다. 국민의 정당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어떻게든 저 망국적인 색깔론과 폭력으로 엮어 재갈을 채우려 했던 것도 정권과 그 끄나풀들이었습니다.
경찰이 날뛰던 날, 시위는 격해졌고,
경찰이 여론을 의식해 잠잠했던 날, 시위는 평화로웠습니다. 대화를 요구한 국민들에게 정권은 명박산성을 쌓았고,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 방패를 휘두르고 닥치는 대로 연행해 갔습니다. 수구언론들은 정권과 결탁하여 왜곡과 막말을 일삼았으며 이것은 다시 정권의 악행을 불러 왔습니다.
그러했던 악순환은 결국 종교계가 나서면서 끊어지게 되었습니다만, 지금 현실은 하나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정권은 끝내 쇠고기 고시를 강행했으며 이제 곧 새 수입조건에 따른 미국 쇠고기가 들어오게 됩니다.
국민들은 촛불을 들어 과연 무엇을 얻었습니까?2.
투표를 통해 집권했다는 사실만으로 민주정부라 한다면 너무 단순한 생각입니다. 대선에서 이명박 승리, 총선에서
한나라당 승리라는 사실을 어째서 모든 사안에 대해 국민에게 백지위임을 받았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까? 그들은 변화하고, 다양해지며, 수준이 높아지는 국민들의 요구에 대해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그 요구가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들을 교육하려 합니다. 오만 그 자체입니다.
비록 쇠고기 문제가 도화선이 되었지만 이명박 정권 출범 이래 곳곳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 원인은 결국 철학 없는 실용주의, 까놓고 보니 ‘무조건 노무현과 다르게’ 식, 아니면 답이 안 나오는 속물주의와 다름없었던 이명박 정권의 내재적인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노무현 코드 인사를 비판했던 그들이 거의 ‘조직 폭력배’수준의 막무가내 인사를 계속하고 있고, 방송, 통신을 자기 입맛대로 검열하고 통제하려는 악질적인 의도는 자기 측근을 방통위원장에 앉히고 KBS사장을 갈아치우기 위한 압박, 나아가 현재는 PD수첩 검찰수사로 극에 달하고 있다 할 만합니다.
인수위 시절부터 국민을 공황 상태에 몰아넣었던 영어교육 파문, 국민 앞에 안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한반도 대운하, 수도나 전기 등 국가 기간망의 민영화 추진, 의료보험 당연지정제 완화... 빼놓으면 섭섭합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권인지 의심스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죠.
살린다고 자신했던 경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특히 IMF 때 차관을 맡았던 강만수를 다시 기용하여 고환율 정책으로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이제는 환율 방어 어쩌고 하면서 외환보유고를 마구 털어넣고 있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물론 외생변수의 영향으로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들의 실패를 모른척해서야 될 일입니까?
내치가 이 수준이니 외교도 뻔한 것입니다. 거듭된 삽질로 북한에 대해서는 10년간 해 놓은 것을 깡그리 까먹고 이제는 대화 채널마저 사실상 모두 끊겼습니다. 한미 관계를 복원한다고 했지만 열심히 지는 해 부시에게 비빈 결과 이명박 스스로 부시의 푸들 블레어와 맞먹는다는 칭호만을 획득했습니다. 일본 - 과거를 잊고 미래로 가자고 하니 얼씨구나 하고 도발을 전방위로 재개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지진 현장까지 찾아갔으나 그 대가는 거의 푸대접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지금까지 이명박 정권을 종합해 보면 국민의 뜻을 정면으로 꺾으려고 무력을 동원했다는 점, 그리고 10년간 이어져 왔던 민주화의 유산들을 깡그리 부정하고 5공 시절의 발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정부로서도 실패, 반민주적이면서 동시에 무능력하고 무책임하다는 점에서 더 참담합니다.
민주성과 능력, 양쪽 모두에서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3.
문제는 그들이 이런 현상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스스로를 바꾸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으려는 데 있습니다. 총리는 쇠고기 협상이 잘 되었는데 PD수첩때문에 문제가 커졌다는 소리나 하고 있고, 폭력적으로 시민을 공격했던 주범들은 아직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경제가 어렵다는 사실을 내세워 그냥 입 닥치고 시키는 대로 따라오라는 강요만이 있을 뿐입니다. 비겁하게 이전 정부 탓도 잘합니다. 최근 벌어진 자료 유출 공방을 보고 있으면 그 치졸함에 구역질이 날 지경입니다.
오늘은 제헌절입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라는 헌법의 명령을 이 정권은 너무나 당연하게 거부, 무시, 회피하고 있습니다. 이런데도 이명박 정권이 민주정부라고 할 수 있습니까? 투표로 집권하기만 하면 다 민주정부입니까? 집권한 뒤에는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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